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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이야기/건봉사History

건봉사의 전각 1

乾鳳寺(건봉사) 寂滅寶宮(적멸보궁)


 


柱聯(주련)

萬代輪王三界主(만대륜왕삼계주) 만대의 법왕,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께서

雙林示寂幾千秋(쌍림시멸기천추) 쌍림에서 열반하신 이래 몇 천추의 세월이 흘렀던가.

眞身舍利今猶在(진신사리금유재) 부처님의 진신사리 받들어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普使群生禮不休(보사군생례불휴) 널리 수많은 중생의 예불 쉬지 않게 하리

 

 

釋迦如來齒相塔碑銘(석가여래의 치아 탑비명서문­

 

봉래산(蓬萊山) 춘파(春坡)의 제이세(第二世)인 운파(雲坡)의 문인(門人) 월봉선사(月峯禪師) 쌍식(雙式)이 글을 짓고 글씨를 썼으며, 전액의 글씨도 아울러서 씀

 

듣건데, 먼 옛날 자장법사(慈藏法師)께서 몸소 서방 인도에 가서 석가여래의 정골(頂骨) 및 치아(齒牙)의 사리(舍利), 그리고 금박을 입힌 가사(袈裟) 몇 벌을 얻어와 양산(梁山)의 통도사(通度寺)에 간직해 두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전해 내려온 지가 몇 천 년의 유래인지 알지 못한다.

 

중간에 왜적이 탈취해 감으로 온 나라 사람이 실망에 빠져있었는데, 사명대선사(泗溟大禪師) 유정(惟政)께서 일본국에 사신으로 가서 치아 12()를 도로 봉환해 와서 건봉사(乾鳳寺)의 낙서암(樂西庵)에 간직해 두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보배롭게 여긴 지가 또한 여러 해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불법(佛法)이 땅에 떨어지자 사람도 가벼워지고 법도 가벼워졌으니, 밖으로 드러내어서 봉안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으므로, 여러 대중들과 상의하여 탑을 세울 것을 계획하고는 각각 재물을 출연(出捐)하고 장인을 불러서 탑 돌을 다듬어 건봉사의 서쪽 산록의 안전한곳에 편안하게 모셨다.

비록 불법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만세토록 심원한 불법을 길이 보존하기 위함이니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게 되었으니 불도를 받드는 성의가 더욱 깊고 치밀하다 하겠다.

이에 구름도 즐거워하고 강물도 기뻐하며, 승려와 속인이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앞타투어 몰려와 무릇 보고 듣는지 지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참으로 고금에 보기드믄 광경이요. 좋은 인연이다. 그러니 재물을 덜어 보시한 신도와 역사를 맡은 임원과 돌을 다듬는 석공들은 부처님의 소중한 치아사리로 하여금 거듭 오늘에 빛을 발하게 한 사람들이다.

, 아름답도다.

월봉 쌍식은 미천한 재주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삼가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리고 비명을 짓노니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명한다.

 

이분이 우리의 대각(大覺)이시요

중생(衆生)들의 스승이라.

극락정토(極樂淨土)에서 입멸을 보이시자

도리천(忉利天)에 탑을 세워 봉안했던 사리니

팔만 나라를 주류하다가

우리 나라에 인연이 있어

보배로운 석가여래의 치아사리를 봉안함이니

기린의 뿔과 같이 진귀(珍貴)하도다.

산문(山門)에 면선(面鮮)하니

수립한 바가 탁월한데,

모든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니

용천(龍天)이 호우(護佑)하도다.

온 나라의 아름다움이요

만세의 영풍(英風)이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로다.

 

황명 숭정기원후 100년 태세(太歲) 병오년(영조 2, 1726) 6월 일에 비석을 세움.

 

釋迦齒相立塔碑銘

釋迦如來齒相立塔碑銘幷序

蓬萊山春坡第二世雲坡門人月峯禪師雙式撰書幷篆

聞夫於過去世慈藏法師躬入西國而得釋迦如來頂骨齒牙舍利及金點袈裟若干藏之於梁山

 

通度寺未知其幾千年之流來矣中間倭來取去擧國失望我 國泗溟大禪師惟政 奉使于日

本還取齒相一十二枚藏之於乾鳳之樂西庵而人皆珍玩者亦閱年禩矣衆曰佛法墜殘人輕法

輕則不可發外而奉安也衆謀樹塔各出物財請工伐石安厝于寺之西麓宜安之處雖云釋道之

風滅沒亦爲萬歲深遠之長久矣可謂奉佛之誠增深密密者也於是雲欣水悅僧顚俗倒凢諸見

聞者莫不興敬眞古今罕有之勝因緣也然則施財檀越執役僉員錬石良工使佛寶牙重光於今

日者也嗚呼美哉雙式不揆不才謹拜稽首而爲之銘曰

是我大覺 人天之師 示滅西天 建塔忉利 八萬周國 有緣東土 寶牙奉之 惟獜之

角 而鮮山門 所立卓爾 人皆敬之 龍天護佑 國之美矣 萬歲英風 終古不滅

皇明崇禎紀元后一百年大歲丙午六月 日立

 


건봉사의 자료와 여러분들의 고귀한 자료를 참고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